본문 바로가기

책의생각/자기계발의 생각

지금 여기 깨어 있기

책 정보

지금 여기 깨어 있기 - 정토출판
법륜



책을 선택한 이유

혜민 스님의 책을 본 이유와 같이 불교의 가르침이 세상에 적용되는 방식이 궁금했습니다. 어떤 핵심 가치를 가지고 어떤 가르침을 하는지.



책의 주관적 평점  ★★★

법륜 스님의 글은 실생활에 접한 가르침을 알기 쉽게 써주십니다. 단순히 기도하기보다는 스스로의 내면을 완성시키는 것을 추구하는 이러한 가르침들이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도 이쪽 계통의 책을 많이 볼 것 같습니다.



인상 깊었던 부분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선사들의 이야기를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고뇌하고 있는 문제와 비교해 살펴보세요. 자신의 생활 속에서 바로 살펴야지 남이 먹다가 버린 쓰레기통을 뒤지듯 내가 체화하지 않은 채로 남의 깨달음을 뒤지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래 위에 성을 쌓은 것처럼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인생에 대해 어떤 확신도 없이 그저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살기 때문입니다. 김치 좋아한다, 고추장 좋아한다, 된장 좋아한다고들 말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길들여진 습관일 뿐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의해 살아지고 있기 때문에 인생이 꿈처럼 허망하고 뒤죽박죽인 것입니다.



나를 아는가


우리는 자기 생각에 갇혀 사는 줄 모릅니다. 내 눈을 뜨지 않는 이상 이 세상에 부처님이 수없이 와도 나를 구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남 탓하지 말고 자기를 살펴 눈을 뜨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자기를 돌아보라


내가 아상에 사로잡히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항상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거기서 깨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고집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눈은 못 떠도 세상이 어둡다고 불 밝히라며 고함지르지는 않습니다. 어둡기는 어둡지만 이것이 정말로 불이 없어 어두운지 내가 지금 눈을 감아서 어두운지 구분할 줄은 알아야 합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일체유위법'. 즉 갖가지 형상이라고 하는 것, 명예니 이름이니 하는 모든 함 있는 법은 모두 '여몽환포영', 꿈 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 실체가 없다, 텅 비어있다는 것이지요.

'여로역여전' 아침 이슬 같고 번갯물 같다, 무상하다, 금방 변해버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응작여시관' 이렇게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아이고, 무상임을, 공임을, 텅 빈 것임을, 잠시 머물다가 곧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속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는 가운데서도 정신을 차리고 속는 가운데서도 속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수행의 힘을 키워라


언제나 삶에서 부딪히는 일을 안으로 살펴야 해요. 타성적으로 보지 말고 새로이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무슨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요.



삶 속에서 공부하라


어차피 자식 낳은 김에, 어차피 부도 난 김에, 어차피 암에 걸린 김에, 어차피 늙은 김에 괴로워하지 말고 깨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세요. 늙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병이 났을 때만 깨칠 수 있는, 배신당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도리가 있습니다. 원효도 해골바가지 물을 마셨다가 토했을 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곳마다 거기에 있어요.


(남편이 같이 약속에 나가 준다고 해서 기쁜 마음에 남편의 옷을 챙기다 호주머니 속의 다른 사람과 본 극장표를 보고)

극장표를 보기 전에는 남편이 그렇게 좋았는데 극장표를 보고 나니 철천지원수가 되어있어요. 그러면 극장표 보기 전의 마음과 본 뒤의 마음 중 어떤 것이 본래 나의 마음인가요?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제 해골바가지인 줄 모르고 마셨을 때는 그 물이 너무나 달콤했는데 오늘 해골바가지인 줄 알게 되니 똑같은 물인데도 더러움을 참지 못하고 토해버렸습니다. 그처럼 "이 죽일 놈!"하는 것은 극장표에 있지 않습니다. 다 내 마음 가운데에 있어요.



탑 앞의 소나무가 되어라


우리는 늘 현재의 자기 직분을 놓칩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러 와 놓고는 남을 가르치는 사람도 잇고, 가르치러 왔는데 그걸 방임하는 사람도 있고,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 감사햐야 할 사람이 오히려 도움을 준 사람을 욕 하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 왜' 이 세 가지에 늘 깨어있으면 삶에 후회라는 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지나고 보면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깨어있으려면 스스로에게 '내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기 위해 있는가?'를 늘 물어보고 자기가 그 목적에 맞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 순간만큼은 자기가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나고 보면 잘못했다, 어리석었다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그 순간에는 모두 나름대로 잘한다고 한 일입니다. 잘못하는 길을 일부러 선택해서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삶에 유용하게 만들어라


일어나는 모든 일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닙니다. 좋은 일이라고 했던 게 내일 가면 나쁜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라 했던 게 내일 가면 좋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넘어진 것은 나쁜 일이라 하지만 넘어졌을 때 돈을 주웠다면 잘 넘어진 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의 일일 뿐이에요. 그것을 어떻게 자기의 삶에 유용하도록 만들어내느냐는 오직 본인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내가 옳다', '네가 옳다' 이렇게 시비하는 것이 색입니다. 옳다 그르다 하지만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아요. 이쪽저쪽 이야기를 다 들어보면 그냥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른 것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이에요. 그러니 색은 색이 아니라 곧 공이에요, 공이 곧 색입니다. 이것을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합니다. 옳다 그르다 하지만 사실은 옳다 그르다 할 것이 없다, 모두가 마음 따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일체유심조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선택에 선택을 거듭해서 지금 여기까지 온 거예요. 이걸 자업자득이라고 합니다.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모두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과이지요. 그런데 닥친 순간에는 잘한다고 했지만 지난 뒤에 보면 잘못한 게 너무 많아요. 순간순간 잘했지만 지난 뒤에 다시 보면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했다 싶지요. 왜 이럴까요? 세상을 바로 보고 사는 게 아니라 눈 감고 살기 때문이에요. 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잘못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들 순간순간은 나름대로 잘살았어요.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하고 어리석었기 때문에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한 순간 어리석어서 그런 행위를 해버렸다면 스스로의 선택에 따르는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인연과보라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과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전생을 원망하고 사주팔자 타령을 합니다.


  

출처: 지금 여기 깨어 있기, 정토출판

'책의생각 > 자기계발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펜서 존슨 행복  (0) 2017.01.16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0) 2017.01.15
젊은 날의 깨달음  (0) 2017.01.06
에스더 효과  (0) 2017.01.05
행복한 이기주의자  (0) 2017.01.03